10년째다.
집안 일과 육아의 반복으로 '나'는 없고 누구의 엄마로 푸석한 얼굴과 살이 붙은 몸뚱어리로 매일 반복된 일상을 살아온 지.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더니
결혼 전에는 결혼과 출산으로 가정을 꾸려 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뭔가 완성형인 것 같고 행복해 보이고 나만 뭔가 뒤처진 거 같고 알 수 없는 감정들로 그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었다.
근데 막상 결혼, 출산, 육아를 해보니 그때보다 몸과 마음이 더 지치고 힘들다(백배 정도)
물론 자식을 키우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과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친구 내편 신랑이 있어서 행복할 때도 있다.
5살, 유치원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다른 엄마들과 눈인사를 나눌 때 엄마이자 '여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기 시작하니 내 꼴이 왜 그리도 창피한지..
머리, 피부, 몸매, 입은 옷, 심지어 냄새까지.. 맞벌이 엄마들은 아침부터 약간 젖은 머리(아침에 씻었다는 의미)로 재킷이나 치마를 즐겨 입고 늘 빠른 걸음으로 좋은 냄새를 풍기면서 스쳐 지나갔다.
나는 등원시키고 돌아서면서 집에 어서 가서 좀 누워 쉬어야지~ 저녁은 뭘 해 먹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애가 클수록 몸은 조금씩 편해졌으나 내 정신은 더 힘들어졌다.
늘어나는 학원비, 늘어나는 식비, 늘어나는 내 살들을 보며 내가 일을 하면 경제적으로도 좀 더 여유롭고 내 외모에 대한 투자도 좀 할 수 있고 쓸모없는 사람에서 뭔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6~7시 퇴근하면 좀 그래
집에서 너무 멀어도 좀 그래
이 일은 내가 하기에 좀 그래
이거 저거 따지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여기저기 알아보다 그런 결론이 나니 더 우울해진다.
어릴 때 내 꿈은 전업주부였다.
초등학교(나는 국민학교 시절) 때 장래희망을 쓰라고 하면 딱히 되고 싶은 게 없던 나는 현모양처(집에 있는 엄마의 의미로)라고 늘 썼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난 꿈을 이룬 건데?
꿈을 이룬 지금이 내 인생 최대로 우울한데? 뭐지?
인생은 계획대로 안되고 늘 뜻하지 않게 뭔가 찾아온다 더니
그렇게 똑같은 평범함 일상 속에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집 근처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면접을 보러 갔더니 또 나를 너무도 마음에 들어 하네(?) 이 기적 같은 일이(?) 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모든 게 감사하고 힘들어도 재미있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 내가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부족한 거 같고 자존심이 상하고 그런 마음이 들면서부터 몸은 더 피곤해지고 결국은 6개월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 내 어릴 적 꿈을 이뤘고
> 결혼한 친구들을 부러워하다 늦은 나이지만 결혼하고 출산까지 어렵지 않게 했고
> 그러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그것도 집 근처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이 모든 게 내가 바라고 원해왔던 것들인데 왜 난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내게 던지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거나 글로 정리하다 보니
알아차리게 되고 '탓'만 하고 불만 가득했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피부는 푸석해지고 44에서 66으로 사이즈도 바뀌고
자신감도 자존감도 바닥을 치고 있지만
그래도 여태 잘 해냈다고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내 꿈을 이루었다는 걸
내가 바라던 것들을 어렵지 않게 얻어왔었다는 걸
그렇게 따지면 난 행복한 전업주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일 또 어떤 기분일지 어떤 생각이 날 괴롭힐지 모르겠으나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미소 짓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세상 모든 전업주부들이여, 힘내요!